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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3월호 -강제취재/박지만 사장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3월호 -강제취재/박지만 사장
  • 양우영 기자
  • 승인 2021.05.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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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호

전문 경영인으로 변신한 고 박정희 전대통령 외아들

박지만 사장 

한국의 '아이아코카' 꿈꾼다

한때의 갖가지 구설수를 딛고 삼양산업 사장에 취임한 지 1년이 지난 박지만씨는 요즘 사업확장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등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1991년 3월호 -강제취재/박지만 사장
1991년 3월호 -강제취재/박지만 사장

 

사생활을 둘러싸고 갖가지 구설수에 올랐던 박정희 전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씨(33)가 작년 10월 박대통령 11주기 추도식이 열린 동작동 국립묘지에 참석한 이후 그의 가족들이 모처럼 자리를 찾아 안정생활을 추구하고 있다. 

박지만씨는 작년 1월 삼양산업의 촉탁 부사장으로 취직한 지 3개월만에 대표이사로 취임, 본격적인 기업활동을 펼치며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데 그의 측근은 이렇게 전한다.

"가끔 박사장을 만나보면 하는 얘기라곤 온통 사업에 관한 것 뿐입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도 사업 이야기만 나오면 그렇게 신이 나서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박씨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누나(근혜 · 근영) 들이나 측근들은 이제 방황을 끝내고 자리를 잡아가는 그에 대해 무척 대견스럽게 여길 정도다.

사실 외아들인 박지만씨는 나이 때문인지 10·26 충격으로 오랫동안 방황을 하기도 했다. 81년 4월 육사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한 박씨는 86년 3월 대위로 예편했다. 

이듬해 6월에는 큰누나 근혜씨가 재단이사장으로 있는 영남대 자매교인 미 인디애나주 볼스테이트대학에 유학, 교육행정학 석사과정을 밟다가 도미 1년5개월만인 지난 87년 12월 귀국했다. 

귀국 이후 서울 강남구 방배동 빌라에 혼자 살며 고교동창들과 어울리다 히로뽕 관련 수사에 연루되는 등 번민을 계속해 세인의 동정을 받기도 했다. 

박씨는 미국유학을 앞도고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으로부터 "같이 일하면서 사회경험을 쌓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 김회장은 당초 박씨가 대우입사를 원할 경우 회장 비서실에 근무시켜 기업과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경험을 폭넓게 쌓게할 계획이었다. 

그후 이 훈련과정이 끝나면 해외지사에 근무시켜거나 중소기업을 차려서 독립시킬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박씨는 김회장의 권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긴 했으나 유학으로 진로를 수정해 일단은 대우와 인연을 맺지 않았다. 

그러다가 89년 10월, 포철 박태준 회장의 도움으로 금산의 중소기업인 삼양산업 촉탁 부사장에 취임, 경영수업을 쌓기 시작했다. 박회장은 박씨의 히로뽕사건 이후 박씨를 친구들과 격리시키기 위해 외가가 있는 충북 옥천에 머물게 하면서 삼양산업에 소개시켜 주었다. 

당시 삼양산업은 자본금 8억원 규모의 전자제품 부품원료인 소프트 페라이트 생산업체로 포철의 계열사인 거양상사가 4억원, 쌍용계열사인 쌍용자원계발이 1억5천만원, 삼화전자가 5천만원등을 출자한 중소기업.

그가 삼양산업 부사장에 취임한 지 3개월만에 전격적으로 대표이사 사장직에 발탁되자 "그가 어떻게 대표이사 사장직에 앉았는가"하는 의문이 떠돌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주주총회마저 비밀리에 끝나 아리송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박씨는 사장에 취임한 후 사생활 면에서나 기업활동 면에서 예전과는 달리 왕성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중략)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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