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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3월호 -비화공개/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증언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3월호 -비화공개/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증언
  • 양우영 기자
  • 승인 2021.05.0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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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호

'군벌정치'통해 전두환씨 월남전 비화 폭로한 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증언

전두환대령 월남전 훈장수여 반대한 장군에게 집권하자 보복조치

전두환씨를 중심으로 한 사조직 '하나회'의 내막을 파헤친 강창성씨가 월남전에 참전했던 전두환대령의 '웃지 못할' 일화를 폭로했다. 전대령은 사병들이 식수난을 겪을 때도 식수로 샤워를 하고, 전과를 올리기 위해 월남 양민의 귀를 잘라오도록 했다는데······ 과연 사실인가.

1991년 3월호 -비화공개/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증언1
1991년 3월호 -비화공개/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증언1
1991년 3월호 -비화공개/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증언2
1991년 3월호 -비화공개/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증언2

 

제3공화국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권력의 중추였던 중앙정보부의 요직과 보안사령관 등을 역임하면서 현실정치에 깊숙이 개입해 온 강창성씨(62 · 명지대 교수)가 저서 '군벌정치'를 통해 80년대 신군부 세력의 실체, 5공 집권과정 등에 얽힌 비화를 폭로했다.

육사8기생으로 박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그는 대통령 서거 이후 전두환 전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군인들에게 수모를 받으며 수형생활의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러던 중 83년 말 강씨는 청와대정무수석비서관으로부터 '고위층의 뜻'임을 암시하는 외유를 권유 받았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동경대학교에서 머물며 일본군벌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연구를 통해 개인적인 한을 승화시키겠다는 의도도 있었고, 또 군이 정치전반에 개입하게 되면 종국엔 군도 파괴되고 나라도 망한다는 교훈을 결론으로 제시하고 싶어서 일본의 군벌흥망사를 택하게 됐습니다"

그는 이 저서를 통해 군벌 '하나회'조직과 전두환장군의 집권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는데, 특히 전두환대령이 월남전에 참전해 벌인 에피소드가 눈길을 끈다.

"전두환장군의 경우 그가 대령으로 주월9사단 제29연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고위장성들과 민간인 등 외부 손님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이들을 응대 하느라 본연의 임무인 작전지휘권을 종종 참모에게 위임한 바 있다고 당시 9사단 참모였던 모씨가 밝힌 적이 있습니다"

강창성씨는 이것이 태평양전쟁에서 파벌을 조성하여 개인적 이익에만 급급했던 일본군벌의 일부 지휘관들이 야전지휘관으로서 능력의 한계를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

전두환씨는 육사 동기생 1백56명 중에서 가장 먼저 대령 계급장을 달았다. 그는 중령 시절 월남전장을 시찰한 이후 자신이 직접 뛰어들 결심을 했다. 그는 5.16혁명 이후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며 군복을 벗고 출세길로 들어설 수도 있었지만 군인으로 남기를 원했다고 한다.

전두환씨는 대령 진급과 더불어 1년 동안 참모총장의 수석부관을 지내다가 박대통령에게 월남으로 보내달라고 청원했다. 마침내 그는 1970년 11월 22일 백마부대 29연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중략)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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