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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사회의 성년후견
고령사회의 성년후견
  • 전현정
  • 승인 2021.05.22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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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리바람에 떠는 나목(裸木),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枝)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박완서, 「나목」).

고령화 사회를 넘어서 고령사회에 접어들고 있다.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 14% 이상이면 고령사회(aged society),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postaged society)로 분류를 한다.

우리 사회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16%를 차지하고 있는데,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여 5명 가운데 한 명이 65세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달 유명 여배우에 대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논란이 되었다. 외국에서 후견인 지정을 둘러싸고 남편과 형제들 사이에 법정 분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본인이 건강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이런 상황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우리나라에서 2013년 7월부터 시행된 성년후견제도는 2015년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인 지정을 둘러싼 분쟁으로 널리 알려졌다. 신 회장이 중증 치매 등으로 정상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인지, 성년후견인이 필요한 상태인지에 대해 자녀들 사이에 다툼이 일었다. 법원이 신 회장에 대해 한정후견 개시를 확정하며 분쟁이 일단락되었다.

성년후견제도는 질병, 장애, 노령 등으로 의사결정에 도움이 필요한 성인에게 법원이 그 의사를 대신 결정할 후견인을 지정하는 제도이다. 노년에 결정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재산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신상에 관한 것이다. 고령사회가 되면서 연명의료중단을 비롯하여 자신의 신상에 관한 사항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개개인이 가진 재산이 많아지면서 노년에 재산을 처분하는 문제가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재산상속 문제도 예전에 비해 더욱 복잡해져가고 있다.

성년후견제도는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세 가지로 나뉜다. 후견제도를 이용하려면 먼저 후견 개시의 결정을 받아야 하는데, 이들 사이에는 개시 요건이 각각 다르다. 성년후견은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되어야 한다. 한정후견은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하면 된다. 의사능력이 없는 정도로 정신장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판단력이 불완전하면 된다.

일반적으로는 한정후견이 많이 문제될 수 있다. 특정후견은 정신적 제약으로 일시적 후원 또는 특정한 사무에 관한 후원이 필요한 경우여야 한다.

후견 개시와 함께 누가 후견인으로 선임될지도 중요한 문제이다. 법원은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되, 건강, 생활관계, 재산상황 등을 고려하여 후견인을 선임한다. 가족, 친척, 친구도 선임될 수 있지만, 가족 간의 다툼이 클 때에는 변호사, 법무사, 세무사 등 전문가 후견인이 선임된다.

법인도 성년후견인이 될 수 있다. 성년후견인으로 지정되면 피후견인의 신상 보호뿐 아니라 재산권도 대신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정신적 제약이 없는 사람도 미래를 대비하여 후견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이른바 임의후견이라고 하는데,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하게 될 상황에 대비하여 재산관리와 신상보호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위탁할 수 있다. 본인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019년 성년후견 신청 건수는 6,984건으로 2014년에 비해 약 3배가량 늘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용률이 저조한 편이다. 이 제도를 필요로 하는 대상자 수의 1%만 이용하였다고 한다. 우리사회에서 성년후견제도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1992년 성년후견제를 도입한 독일에서는 성년후견제도가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2016년 130만 명이 이용했는데, 치매노인 인구 대비 86.7% 수준이라고 한다. 독일에서 성년후견제가 많이 활용되고 있는 이유는 제도 설계가 잘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성년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치료와 재산관리 등을 도와주되 피후견인에게 전면적인 후견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후견인이 임무를 수행할 때에도 객관적 기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피후견인이 무엇을 바라고 생각했는지, 그러한 의사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의 의사는 무엇일지를 감안하여 임무를 수행한다. 후견인 선임도 무료이다. 피후견인 대신 법무부가 후견인에게 활동비를 지급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 말년에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성년후견제도는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좋아하는 차 한 잔을 마시며 노년을 평온하게 보낼 수 있도록 고령사회를 위한 제도설계가 필요하다.

그것은 노년의 평화를 당연한 전제로 한 법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분쟁을 전제로 그것을 예방하려는 세심한 노력에서 나온다.


글 전현정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씨엘)

 

 

전현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고문변호사다.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대한변협 양성평등센터장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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