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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림 작가·김진만 PD '이 부부가 사는 법'
고혜림 작가·김진만 PD '이 부부가 사는 법'
  • 김은정 기자
  • 승인 2021.12.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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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지만 자유롭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고혜림 작가·김진만 PD '이 부부가 사는 법'
고혜림 작가·김진만 PD '이 부부가 사는 법'



언제든 오지로 떠나는 야생형 행동파 PD와 집순이 느림보 작가. 식도락을 즐기는 남자와 식탐이라고는 병아리 눈물만큼도 없는 여자. 이토록 이질적인 부부가 한 집에서 원만한 공존이 가능할까. 미련이나 집착 없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속도대로 사는 부부. “함께 살지만 자유롭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는 이 부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주옥같은 작품 탄생시킨 다큐 명콤비

김진만 피디, 고혜림 작가라는 이름은 항상 세트로 붙어 다녔다. 두 사람은 mbc 다큐의 간판 피디와 작가로 주옥같은 작품들을 함께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휴먼다큐 사랑> 파괴되어 가는 자연의 실상을 보여준 <남극의 눈물>, 오지 원시부족의 삶을 보여준 <아마존의 눈물> 등 한국 다큐사에 한 획을 그은 명 다큐들이 두 사람의 작품이다. 방송일은 피디와 작가가 서로 손발이 맞아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데 두 사람은 그야말로 만드는 것마다 성공시킨 환상의 커플이었다.

김진만(이하 김) : 고 작가는 구성부터 촬영까지 피디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과정을 밟아나가야 하는 지를 알게 해줬어요. 그리고 시청자들이 채널을 떠나지 않고 계속 보고 싶게 하고 어느
부분에서 감동하는지를 아는 작가예요. 
고혜림(이하 고) : 김 피디는 결정이 빠른 피디예요. 피디가 결정이 빨라야 스태프들이 고생하지 않고 특히 작가는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일이 잘 안 되어도 남 탓을 안 해요. 어떤 피디들은 공은 자기가 가져가고 과는 남에게 돌리는데 김 피디는 전혀 그런 면이 없어요.

결정이 빠른 피디와 프로그램을 참 잘 만드는 작가가 만나 한 배를 탔으니 작품성과 시청률 모두 좋은 결과를 냈고 두 사람은 명품 다큐를 만드는 명콤비로 활약해왔다. 작가, 피디에서 평생의 동반자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90년대 후반. 당시 고 작가는 메인 작가, 김 피디는 갓 입사한 막내 피디였다. 두 사람의 첫인상은 어땠을까?

고 : 우리시대라는 프로그램을 할 때 김 피디가 막내 피디로 왔는데 발랄하고 해맑고 항상 웃는 ‘웃상’인 거예요. 한마디로 주변을 밝고 기분좋게 해주는 사람이었죠.
김 : 처음 봤을 때 짧은 스커트에 군화를 신고 아주 튀는 복장이더군요. 그래서 ‘날라리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일은 아주 잘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작가들이 보통 술, 담배 많이 하는데 그런 것도 안 하고 회식 자리도 안 오고 ‘독특한 영혼의 소유자구나, 친해지기는 어렵겠다’라고 생각했죠.

이렇게 메인 작가와 막내 피디로 만나 함께 일을 시작한 두 사람. 피디는 사냥꾼이고 작가는 아내라는 말이 있다. 피디가 밖에 나가 사냥감을 가져 오면 작가가 맛깔나게 요리해 만들어내는 것이 프로그램이라는 것. 어쩌면 그때부터 부부의 연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

김 : 고 작가랑 꼭 결혼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그냥 함께 있다 보니 그것이 너무 익숙했고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졌어요.
고 : 같이 일할 때 만날 이게 마지막이야 하면서도 어느새 또 작품을 같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지요. 그랬던 것처럼 김 피디랑 저도 꼭 결혼해야겠다 생각하진 않았는데 어느 날 보니 결혼해서 함께 살고 있더라구요. 처음엔 결혼한 것이 실감도 나지 않았는데 살면서 점점 실감하고 있어요.

두 사람은 둘 다 한 번씩 헤어짐을 겪고 2013년에 재혼했다. 서로의 첫 결혼 때는 직장 동료로서 결혼식에 가 축하해주고 심지어 고 작가는 김 피디의 신혼집 인테리어 업체를 소개해주기까지 했다. 그랬던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좋은 점이 참 많다고 한다.

고 : 첫 결혼에 실패하고는 다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막상 하고 보니 참 좋더군요. 특히 아침에 일어났을 때 설거지가 깨끗이 되어 있는 걸 보면 결혼하길 참 잘했다싶어요
김 : 오지에 촬영을 가면 6개월이고 1년이고 긴 시간을 가있는데요. 고 작가가 집에 있다는 것이 든든해요. 돌아오면 집이 쉼의 공간이 되게 해주죠. 생활에서나 프로그램에서나 나를 지지해주는 내편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됩니다.

두 사람은 같은 조직에서 동료로 함께 일해 오면서 이야깃거리가 많아 재미있다고 한다. 김 피디의 과거사, 연애사를 고 작가가 놀리기도 하고 꼴 보기 싫은 사람은 같이 욕하고 괜찮은 사람은 같이 칭찬한다. 한 지붕에 살아도 대화단절로 남남처럼 사는 부부도 많은데 두 사람은 언제나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일하는 것, 노는 것, 먹는 것 모두 함께하는 두 사람. 그래서 누구보다 서로의 장단점도 잘 알지 않을까?

고 : 김 피디의 장점은 꼬인 점이 없다는 거예요. 이야기를 하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삐지거나 하는 일이 없어요. 단점은 호구라는 것. 늘 밥을 사고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에요.
김 : 고 작가의 장점은 한결같다는 거예요.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지 않고 일률적이에요. 그리고 유머러스해요. 단점은 음식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다는 거예요. 도무지 뭐가 먹고 싶다는 의견이 없어요. 뭘 시켜서 같이 먹고 싶어도 잘 먹지를 않으니 그게 불편해요.
고 : (김 피디에게) 그러니 본인이 먹고 싶은 거 먹지. 그건 장점 아냐?

티격태격 알콩달콩한 모습이 신혼부부 같다. 두 사람은 결혼하고 나서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일도 더 잘 됐다고 한다. 결혼은 두 사람에게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가져다 준 참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부부의 첫 공동 저서, 호모 미련없으니쿠스

이렇듯 방송 일에서도 가정에서도 늘 환상의 콤비인 두사람이 얼마전 공동으로 책을 출간했다. <호모미련없으니쿠스>. 책 제목이 참 재미있다.
 

김진만PD. "'호모미련없으니쿠스’는 김 피디를 지칭하는 거예요. 항상 해맑고 행복하고 고민을 심각하게 하거나 미련을 가지는 일이 없어제가 ‘미련없다, 미련없다’ 놀리다가 그렇게 부르게 됐죠."
김진만PD. "'호모미련없으니쿠스’는 김 피디를 지칭하는 거예요. 항상 해맑고 행복하고 고민을 심각하게 하거나 미련을 가지는 일이 없어
제가 ‘미련없다, 미련없다’ 놀리다가 그렇게 부르게 됐죠."

 


고 : ‘호모미련없으니쿠스’는 김 피디를 지칭하는 거예요. 항상 해맑고 행복하고 고민을 심각하게 하거나 미련을 가지는 일이 없어 제가 ‘미련없다, 미련없다’ 놀리다가 그렇게 부르게 됐죠.
김 : 저보다는 고 작가가 더 미련이 없어요. 타인의 관계에 얽매이지 않으려 하고 혼자임을 즐기고 자유롭죠. 그래서. 호모미련 없으니쿠스는 저보다는 고 작가에게 더 맞는 말이에요.

책에서는 고작가를 ‘호모 슬로스’라고 지칭한다. 행동파 피디와 느림보 집순이 작가. 얼핏 보기에는 캐릭터가 굉장히 다른데도 두 사람이 닮았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듯 닯은 두 사람이 함께 쓴 책에는 치열한 방송현장, 알콩달콩한 가정사, 여행기, 요즘 사회에 대한 단상 등이 잘 정리되어 있는데 결국은 미련 없이 집착하지 않고 쿨 하게 살자는 것이 메시지다.

고 : 요즘 사회가 너무 니편 내편 갈라져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하는 세태여서 그런 모습을 보며 고민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사회가 서로 집착하지 말고 미련 갖지 말고 쿨하게 살면 좋겠다 싶어 이 책을 쓰게 됐어요.


외로움, 받아들이니 편해지더라

아무리 미련도 집착도 없는 쿨한 고 작가지만 남편이 휴대폰도 안 터지는 오지로 가 몇 달씩 집을 비우면 외롭지 않을까?

고 : 남편이기 전에 촬영을 하러 가야 하는 피디고 일이 우선이니까 보내주는 거죠. 그리고 제가 그 일을 잘 알기 때문에 서슴지 않고 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김 : 저라고 해서 고생하는 곳에 가는 것이 뭐 그리 좋겠어요?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주고 항상 응원한다는 생각에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쩔 땐 촬영해온 것을 보고 그림 부족하다고 더 찍어 오라고 보내기도 해요.

작가로서 남편의 일을 잘 알기에 보내주는 것도 있지만 고 작가는 외로움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확실하고 의연한 사람이다.

고 : 외로움은 절대 해결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20대 중반까지는 외로움을 앓아도 봤지만 결론은 외로움은 인간 본능의 하나라는 거죠. 어느 순간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인생에서 같이 가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받아들이니까 오히려 연연해 하지 않게 되더군요. 남편과도. 같이 있을 때 물론 좋지만 바쁘게 돌아다니고 멀리 떠나야 하는 남편을 쿨 하게 보내면 또 나름 혼자의 시간도 괜찮아요.
김 : 저는 원래는 혼자 있는 걸 못 견디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고 작가를 알면서 배운 게 인간관계에 집착하거나 치일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고작가는 책에서도 외로움에 연연하지 않는 것을 자신의 강력한 무기라고 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다른 이들에게 매이지 않아도 되니 아쉬울 것이 없다. 그냥 혼자 있으면 되니까.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사랑이나 우정 따위에 덜 아파해도 된다. 상대가 기대에 어긋나거나 변심을 해도 덜 섭섭하고 덜 실망스럽다.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순간 인간사 수많은 일이 꽤 깔끔하게 정리된다’


아픈 시대에 위로를 주는 메시지

<호모미련없으니쿠스>를 통해 두 사람은 집착하지 말고 쿨 하게 살자는 메시지를 들려 주고 싶었다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 이면에 이 책이 아픈 시대에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존, 남극, 북극, 캄차카 같은 곳을 다니며 더위와 추위의 극한 상황 속에서 온갖 고생을 다한 김 피디의 경험담을 보자. 영하 40도 날씨에 얼음을 녹여 마시고 포악한 곰 앞에서 생사의 위기를 느끼며 촬영해야 하는 긴장의 연속의 시간들, 열대 모기에게 온몸을 물어뜯기고 무거운 장비를 메고 수십 킬로를 걸어야하는 상황에서도 김 피디는 웃었다. 피디가 인상을 쓰고 있으면 팀원 전체의 스트레스가 배가 되기 때문이다.

‘웃으며 오늘 아쉬웠던 건 뭐지, 내일은 뭐에 집중할지 의논하며 상황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피디가 먼저 망가지는 자해 개그와 실없는 농담을 던지면 팀원들도 더욱 편히 내려 놓는다. 다들 웃다 보면 괴로운 상황도 별 거 아닌 듯 느끼게 된다. 웃으면 웃을 일이 자꾸 생긴다.’

극한 상황 전문 피디의 삶의 노하우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울하고 예민해져 있는 우리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차피 피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받아들이고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먼저 상대를 편하게 만들어 주려는 김 피디의 배려심은 어쩌면 지금의 우리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고혜림 작가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다른이들에게 매이지 않아도 되니아쉬울 것이 없다. 그냥 혼자있으면 되니까. 일에 더 집중할 수있고 사랑이나 우정 따위에 덜아파해도 된다.상대가 기대에 어긋나거나 변심을해도 덜 섭섭하고 덜 실망스럽다.외로움을 받아들이는 순간인간사 수많은 일이 꽤 깔끔하게정리된다."
고혜림 작가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다른이들에게 매이지 않아도 되니아쉬울 것이 없다.
그냥 혼자있으면 되니까. 일에 더 집중할 수있고 사랑이나 우정 따위에 덜아파해도 된다.
상대가 기대에 어긋나거나 변심을해도 덜 섭섭하고 덜 실망스럽다.외로움을 받아들이는 순간인간사 수많은 일이 꽤 깔끔하게정리된다."

 

고작가도 책을 통해 우리가 꼭 귀기울여야할 말을 들려 준다.
‘한인간은 하나의 우주라고 한다.
내가 죽으면 내가 사는 우주도 사라지는 것이다.
고로 세상은 내가 살아 있기에 소중한 것이다.
나는 가장 잘나고 훌륭한 인간은 아니지만 작고 부족함 많은 나
의 우주를 가능케 하는 소중한 존재다.’

이미 ‘휴먼 다큐 사랑’을 통해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보여줬던 고 작가, 그녀의 메시지는 는 좌절감에 빠진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한다.
끈끈한 동지에서 평생의 반려자로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두 사람. 어찌 돌아돌아 부부가 되었지만 부부의 연은 두 사람의 운명이자 인생의 궁극적 결말이었다. 나름 아픔의 시간도 있었겠지만 또 다른 인연을 만나 새로운 인생2막의 무대가 펼쳐질 줄 그들은 알았을까?

두 사람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내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 그래서 더욱 기대되는 것이 인생’.

혹시 지금 아픔을 겪어 낙심하고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의 마지막 문구를 들려 주고 싶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다는 아니다.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을 나의 바다
나의 바다는 어디일까’

 

[Queen 김은정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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